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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ot the breeze

[ 한빛사 ]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충북대학교 백기엽 교수



대학원 시절 사기가 꺾일때마다 브릭에 들어가 한빛사를 보곤 했는데... 거의 1년만에 갑자기 생각이나 들어가보았다. 백기엽 교수님 성함은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익히 들어와서 소개해 봅니다.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소감

"30년 교수 생활에서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나의 노력의 결과가 평가 위원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기쁘고 감사 드리고 싶다. 나의 영광 뒤에는 가치 있는 이 일에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동의하고 동참해 준, 많은 실험실을 거쳐간 포스닥 연구원들, 대학원 및 학부 학생들의 성과와 동료 교수들의 격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힘들고 어려울 때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고,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가족의 희생을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한다. 개발된 기술의 흥망과 성쇄 주기는 날로 짧아지고 있고, 국가의 힘은 과학 기술의 발전 수준을 통해서 가늠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 입국을 향한 모든 과학자들의 꿈이 국가의 힘을 집결하여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진행해 오신 연구 분야 소개

"우리 실험실에서 하고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유용 식물, 즉 고부가가치성이 있는 유용 약용 식물의 생산과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원예 식물의 개화 생리나 품질 향상, 대량 번식에 관한 연구였다. 과학자들은 희귀성이 있고, 부가가치성이 높고, 약용 성분이 축적되는 식물에서 기능성 식품 소재 혹은 의약품 원료를 만들어내는 천연물 소재의 신소재를 탐색하고 개발해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희귀성 식물들의 문제는 거의 대부분 자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획하다 보면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고, 재배지의 환경 조건이나 수확 시기, 토양 조건에 따라서 함량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기 때문에 제약화, 기능화를 위하여 표준화하기 힘들다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런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고 농약이나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고 1년 연중 공장형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물 반응기를 이용한 biomass 생산에 설계부터 제작, 산업화까지 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또 한 가지는 biomass가 생산되더라도 자생하고 있는 식물보다 유효 성분의 함량이 높아야 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그래서 2차 대사 산물의 기작을 규명하고 기작의 중간 생산 단계를 변경하는 등 유효 성분을 높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해왔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서 metabolic engineering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기술을 적용해서 생산되는 2차 대사 산물의 함량은 물리적, 화학적 방법에 의한 함량의 증가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하루빨리 대사 기작이 성공해서 물리적, 화학적인 방법보다 더 많은 유효 성분을 높일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현장 애로 사항 중심의 연구를 주로 많이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난 분야이다. 난 분야는 지금까지 화훼 산업 중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아주 미흡하다. 난은 종류도 다양하고, 광합성 기작도 다양하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Phalaenopsis나 Cattleya 같은 난은 CAM 식물에 속하기 때문에 야간에 탄산가스를 취해서 주간에 동화 작용을 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식물들은 재배 환경이나 온도, 수분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이들 식물에 대한 영양 생리, 광합성 생리, 수분 스트레스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해서 사실 국내에서 보다는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들이 현재 배양하고 있는 것은 국내 자생 생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top 10 안에 드는 소모량이 많은 식물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우리 연구의 40% 정도는 기초연구에 무게를 두고, 60% 정도는 응용연구에 두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실험실에서 개발된 기술이 산업 분야에 나가서 경제적인 가치로 전환하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 예를 들면, 화장품 회사에서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적용하여 천 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기술 이전도 국내에서 2-3억 정도 된다. 해외 기술 이전은 기술 이전료, 장비 설치 비용까지 해서 약 110억불 정도 달성했다. 지금도 외국과 기술 이전 문제로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 아주 조그마한 성과이지만 시골 학교에서 개발된 기술이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끈다는 부분에 대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대규모의 생물 반응기 제작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사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생물 반응기를 설계 제작하는 것이 전공이 아니다. 그 부분은 chemical engineer가 해야 되는 부분이다. 첨단 시설 원예라는 것이 온실의 높이, 창의 수, 환기시설 등이 chemical engineer들에 의해서 공식화된 틀에서 갖추어지면 좋겠지만, 우리들은 첨단농법과는 거리가 있지만 대나무로 세운 비닐 하우스로 농사를 짓더라도 잘 된다는 등의 아이디어와 우리가 알고 있는 세포의 생리 특성을 적용하면 가능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삼각플라스크부터 시작해서 1리터, 20리터, 그 다음 500리터 등 점점 규모를 높여가다가 10톤까지 되었다.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나를 가엽게 생각해서 그런지 세포들이 잘 적응하고 따라주었다. 공학적인 마인드는 없었기 때문에 시행 착오는 많았다."

새로운 분야로의 전환을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

"70-80년대에 조직 배양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하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을 것이다. 다들 분자 생물학 분야로 전공을 바꾸었다. 그런데 조직 배양을 하면 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들이 학교 다닐 때에는 생화학에 대해서 많이 배우지 못했다. 분자 생물학이라는 과목 자체가 없었던 시대에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늦게 출발해서 공부를 한다고 해서 첨단을 이끌어갈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해왔다. 간혹 분자 생물학 분야에 연구비가 많이 몰리는 상황에서 유혹도 많이 느꼈다. 하지만 끌려가는 것 보다 앞서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었고 나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하드웨어적인 기술은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본다. 나 혼자 해야 할 일도 많지만 국제 간의 연구도 아주 필요한 것 같다. 특히, 분자 생물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유전자 개념을 도입해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이나 아미노산, 희귀병 치료에 관련된 물질을 생산하는 세포질을 만들어내면 우리들이 그것들을 배양해서 인류의 4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질병을 치료하는 물질을 우리 기술로 생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앞으로 그 분들이 항상 우리보다 앞서 가서 신기술을 개발해 놓으면 우리가 응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충북대 첨단원예기술개발연구센터 소개

"한국과학재단으로부터 지역협력연구센터(RRC)로 지정되어 1996년에 만들어졌다. 이 사업단은 지원금이 정부, 지방자치단체, 산업체로부터 나와야 과제가 구성되는 아주 힘들었던 사업단이었다. 주로 현장 애로 기술 해결 중심으로 연구하였기 때문에 산업체에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게 되었다. 당시 IMF로 산업체가 어려웠음에도 돈이 될 수 있는 기술에는 투자를 했다. 그래서 확실한 기술만 있으면 투자를 한다는 믿음도 갖게 되었고 눈으로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매년 지원금은 많이 받은 편이다. 12억~15억 정도를 9년 동안 지원을 받았다. 고생은 엄청나게 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돈을 받기가 쉽지는 않다. 기초의원부터 행정가부터 만나야 되고, 조금 알만하면 그 사람들의 자리가 바뀌었다. 그렇게 산업체와 많이 부딪쳐가면서 센터를 이끌어 왔었는데 지금 상을 받게 된 것도 이러한 것들이 가장 큰 밑받침이 된 것 같다. "


그간의 연구 경험 중 기억에 남는 일과 보람들

"70-80년대의 대학의 여건이 건물만 있었지 사실 속은 텅 비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우리 학교도 종합대학이 되면서 신축 건물 공사를 많이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공사 현장에 가서 베니어판, 스티로폼 같은 것을 주어와서 실험실을 꾸미고 했다. 그 때는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라 연구비나 인력이 없었다. 그래서 라면으로 끼니도 떼우고 나의 주머니 돈으로 외국 출장도 다니면서 실험 기자재도 많이 모으고 했다. 지금 같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집사람이 아마 허락을 안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는 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도전적이고 열정적으로 선생이나 학생들이 한 마음이 될 수 있었던 부분이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국내 학술지에만 논문이 게재되는 입장이었고, 90년대 후반부터 외국 학술지에 실렸다. 우연찮게 외국 학술지에 투고를 하고 난 뒤에 외국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아주 많이 받게 되었다. 특히, 지방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열등감이 있는데 그런 열등감이 자연적으로 해소가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80년대 중반 군사정권 시절에는 6시가 지나면 강제로 실험실에 남아 있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었다. 그래서 실험실에 더 남아 있기 위해서 수위 직원분한테 4층에서 1층까지 커피를 타 가지고 대접을 하면서 학생이 남아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들이었지만, 나 뿐만 아니라 그 당시 교수를 했던 사람들은 다 느낄 것이고 공통적인 애로사항이었다."

현장에서의 연구 수행의 고충은?

"정부에서 연구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비 사용 규제나 행정 장치를 잘 운영하는 것과 연구비 수혜자가 실험실에서 실험하면서 겪는 애로 사항이라는 두 시스템 간에는 충돌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연구의 결과나 애로사항 보다는 돈이 투명하게 집행되면 된다는 것이고, 연구자들은 규제가 좀 풀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만약 1억을 주었으면 교수가 그 범위 안에서 투명성을 높이면서 과제를 수행해서 최대의 효율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그런 시스템으로 옮겨갔으면 한다. 투명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연구자에게 연구하는 방향이나 연구비 사용에 있어서 자유를 주었으면 한다.

우리 대학에 약 800여명의 교수가 있다. 이 교수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고 연구 영역이 다르다. 어떤 분야는 활동비가 40~50% 정도 필요하기도 하고, 잘 갖추어진 실험실인 경우 재료비 보다는 인건비가 많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을 전체 연구 규모 안에서 연구책임자가 특성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예외를 주었으면 한다. 재료비, 활동비, 인건비를 일괄적으로 정해놓다 보니 그 규정에 맞추기 위해서 연구비를 낭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단기 성과 위주의 과학 정책을 펴는 것은 노벨상이나 스타 과학자를 배출하는데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R&D 투자라는 것은 과학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힘을 기르기 위해 인력에 투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가 인력 양성이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봐야지, 2~3년 투자해서 특허 몇 건, 논문 몇 편 발표했는가 하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국가의 지표를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과학자들을 단기 성과에 집착하도록 만들어서 결국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연구자가 아닌 조직의 리더로서의 경험은 어떠하셨나?

"사실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고 떠밀려서 하거나 나이 때문에 맡게 된 것도 같다. 나는 큰 사업단을 이끌만한 특별한 리더쉽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수를 포함해서 전문직 종사자들은 고질적인 직업병을 가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집과 독선, 자만이라는 직업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직을 이끌기 전에 집단의 특성과 전문직이 가지는 직업병()의 특성을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어떤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보고 있다. 때로는 감성적인 리더쉽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학교에는 교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부, 대학원, 포스닥, 연구교수, 연구원 등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 보면 자식같은 사람들이다 보니까 요구보다는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지방대 학생들을 데리고 어떻게 논문을 쓰느냐 하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는 불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각자가 지니는 잠재력이 다들 있는 것 같다. 실험을 맡길 때에도 이 사람의 능력이 어떠하고 저 사람의 능력은 어떠한지 파악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또 한가지는, 처음 지도할 때에는 학생들에게 당근을 20%, 채찍을 80% 정도 주었다. 그렇게 하면 생산성도 아주 높고 교수가 시키는대로 테크니션처럼 다 한다. 하지만 이 학생들이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면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스스로 실험을 설계한다든지 실험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는 것도 부족했다. 그래서 차츰 당근을 70%, 채찍을 30%로 바꾸었다. 한 5년이 걸렸다. 그 때는 아주 속이 탔다. 안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학생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값비싼 시약이 들더라도 하게 해 주었다. 학생 스스로 느낄 때까지 기다리는 데에는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 기간만 지나가니까 학생들의 창의성이 키워지고 스스로 일을 해 나가면서 하나의 실험실 전통이 세워졌다."

학생들에게 하고 전하고 싶은 말씀은?

"과학 분야에서 성공하는 방법이나 일반 사회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다들 알고 있다. 부지런해야 되고, 열심히 해야 되고, 성실해야 되고, 정직해야 된다. 그런데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꿈을 꾸는 사람보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 한다.

두 번째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점이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쉽게 말해서 남들이 7시간을 잘 때 6시간만 잔다면 한달이면 30시간이고 1년이면 365시간이다. 하루 8시간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1년에 45.6일을 더 일할 수 있게 된다. 그 시간 만큼 나 자신을 개발하고 의미있는 일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주로 식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식물한테 좀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그마한 지식을 가지고 식물을 함부로 변형시켜서는 안되고, 인간의 욕심대로 잘 자라서 탐스러운 꽃을 피우고 과실이 맺기를 원하는 것은 과욕인 것 같다. 식물 세포 중에서는 담배나 Arabidopsis처럼 사람들의 의도에 잘 순종하고 따라주는 것이 있는 반면, 엇나가서 자주 변이를 일으키거나 기분이 나쁘면 죽어 버리는 식물, 고집불통의 식물 등 별별 희한한 식물들이 다 있다. 식물의 기본적인 욕구는 종족 보존이라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절개지나 메마른 곳에 가면 소나무에서 솔방울이 많이 맺혀있지만, 평지에서 비료를 주고 물 많이 준 소나무들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까 종족을 보존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러한 기본 원리를 잘 이해를 해야 하고, 식물의 유전자 조작이나 첨단 시설에서의 재배는 식물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식물이 웃으면서 활짝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과실을 맺을 수 있도록 식물 유전자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우리가 맞추어 주는 것이다. 결코 우리가 끌고가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식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오면서 느낀 점은 무엇보다 식물한테 겸손해야 하는 것 같다."

과학자로서 당부하고 싶은 점은?

"절대 Cell, Science, Nature에 나오는 것이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 게재할 수 있는 학문 분야가 있고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자동차가 엔진만 있다고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한다. 각 부분마다 역할이 다 있고 그 역할이 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앞서 나가는 첨단 과학에만 투자를 하다보면 첨단과 동반성장해야 할 부분들이 뒤쳐져서 나중에는 첨단이 희석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 정책적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60~70년대 식량 부족으로 통일벼를 만들어 냈을 때 그것이 Cell, Science, Nature에 실리지 않았다고 해서 기여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벼가 정말로 우리 국민의 식량난을 해결해 준 신품종이었다고 평가한다. SCI 논문에 실리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다. 우리가 국가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노벨상을 배출하고 학문이 선진국 대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런 부분에 치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늘지고 연구자들이 기피하는 비인기 학문에서도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발굴해서 잘 지원을 해 줘야 하고 소외 받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공부하는 부분에 있어서 철이 좀 드는 입장인 것 같다. 논문을 발표 할 때마다 하나를 해결해 나가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두 개, 세 개 늘어난다. 이제서야 하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고, 지금까지 해왔던 식물의 세포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 대학에서 아인슈타인 같은 연구를 하든 에디슨과 같은 연구를 하든, 1-2년 후에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거나 10년 후에 경제적 가치로 전환 되든 연구 목표는 인류 복지와 관련되는 것이다. 인류 복지에 기여를 할 수 있고 개발된 기술이 산업화될 수 있도록 기술 이전을 하고 싶다. 학교의 방침이나 학과 미래 예측에 의해서 연구가 중단될 수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


Ref.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106300201995765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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