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제주도이다. 비행기로 가면 1시간 집까지 2시간이면 가는 곳을 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년에 한두번 내려가는 곳이다. 예전에는 1박2일 일정으로 급하게 내려와서 차례만 지내고 훌쩍 올라가는 불효를 저질렀지만 이번에는 약간 여유를 두고 내려왔다. 물론 표를 제때 못구했기 때문이란 웃기지도 않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왕 생긴 여유,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올레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태생이 제주이나 타향 살이가 어느덧 9년이 다 되간터라 2000년대(?)의 제주의 변화된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사실 나는 제주에 3~4번 여행온 분들보다도 제주도에 대해 잘 모른다... 대학교때 부터 주변 분들이 물어봐도 언제 한번 속 시원히 대답을 해준 적이 없다...ㅠ) 무엇보다 이때 생긴 올레길이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전날 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갈수나 있을까 싶었지만 비가 그친것을 아침에 확인하고 기상청에서 구름진행 방향을 확인한뒤 13 코스를 택했다. 내륙코스라서라던지 난이도가 높아서가 절대 아니다.. 북동쪽으로 이동하는 구름을 피해서 정 반대 방향으로 잡은 것 일뿐...ㅎ
점심을 가볍게 먹고 터미널에서 용수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발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16km정도면 3~4시간 이면 가겠지란 생각을 하고 출발했다. 물론 이것이 너무나 무모한 생각이었다는것을 나중에 깨달았지만...
소요시간은 50분 정도 걸린 듯 하다.
도착하니 3시 반정도 였다.
홈페이지에서 보니 용수포구까지 15분을 걸어가란다. 포구란 글자가 보이지 않아 무작정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사전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터라 어디가 시작점인지 모르고 무작정 걷다가 찍은 사진... 멀리 왼쪽으로 차귀도랑 오른쪽에 죽도와 ??섬이 보이네요..(제주도 사람 맞니...ㅠ)
길을 걷다가 올레 여행객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를 만나서 시작지점을 물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란다...
오른쪽에 성당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제주 표착 기념관이란 건물과 성당이 있었다.
자... 포구니까 바닷가 겠고 바닷가 까지 왔는데 도무지 출발점은 보이지 않는다.. 조그만 상점이 보이길래 커피를 하나 사면서 길을 물었다. 휴대폰을 계속 만지작거리던 아가씨가 알려준다. 퉁명스럽게 들렸지만 제법 자세하게 길을 알려준다. 마을방향으로 진입했다.
사실 13코스에서 바다는 여기가 끝이다. 너무 짧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일단 출발.
뭐 이정도는 아주 친절한 편이다.
밭을 따라 나오니 큰 길이다. 뭐야 여긴???? 버스에서 내린 곳이 잖은가?? 버스에서 내리고 바로 건너편으로 가야하는 것이었다.
순례자의 교회란 무거운 이름과 달리 귀엽다는 느낌이 날 정도로 조그만 교회... 옆에 난 창으로 안을 살짝 보았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난 이순간 왜 RPG 게임이 생각이 나던지... ;;; HP가 보충되는 뭐...쿨럭.
안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분위기를 한층 돋운다.
아직 여름이 다 가진 않은 듯 합니다...
용수저수지로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이어집니다. 거름냄새와 들꽃냄새가 풍기며 정겨운 느낌을 갖게 합니다..
멀리서 볼때는 물통인가 싶더니 가까이서 보니 "애기별궁" 이란 글자가 써진 통들이 이렇게 놓여있습니다. 옆에보니 표지판이 있군요.
무료제공 숙소인가요? 예약을 해야 하나 봅니다. 오른쪽에 관리소인지.. 작은 집 한채도 있었구요. 애기별궁을 살자쿵 열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없나...생각하는데 돌담위에 강아지가 한마리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길인지 짖지도 않더군요. 눈까지 검던 검둥개가 저를 멀뚱멀뚱 바라봅니다. 사진 한방 찍어주고 전진.
표지가 아쉬울때만 나타나는(?) 터라 말 그대로 놀멍 쉬멍 걷는게 제일 좋은것 같습니다. 나름 여유있게 걸었지만 급하게 갔는지..돌아간적이 몇 번 있었네요...
계속 숲길만 나오지는 않는다. 중간중간 도로를 끼고 걷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평탄한 길이 계속 이어져 편하다.
길을 따라 재미있는 이름이 새겨진 의자들이 간간히 보인다. 몇 분 정도 걸었을까? 저멀리 커다란 의자가 보였다
이때 시간이 6시 정도.. 길을 알려주던 아저씨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은 저지오름이었다. 너무 멀게 느껴진다.
이제 거의 다왔거니 싶었는데 안개가 끼고 시야가 흐려진다. 게다가 무덤들이 하나둘 나타나는게... 해가 거의 지고 있다.
사진중에서 햇빛을 받고 찍은건 이게 마지막이다. 저지오름은 둘레길을 반바퀴돌면 정상가는 길이 나오는데 정상에 오를때쯤 해가 완전히 져버리고 말았다.
정상에 오르니 안개가 자욱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예전에 공포영화를 즐기던 나도 약간 무서워졌다. ;;;;
정상에 가면 전망대가 있어 주변 경관을 볼수 있게 해놓았다. 옆을 보니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재빨리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끝이 막혀있다. 응? 하면서 앞을 보니까 오름 설명이 있다. 분화구 안에는 예전에 농민들이 작물을 심곤했다... 앞을 보았다.
세상에 나는 분화구 한가운데 와 있었다. 친절하게도 분화구 내부를 볼수 있게 계단을 만들어 둔 것이다.
어두컴컴한 분화구 한가운데 시커먼 나무와 추운 기운까지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사진을 찍었는데 심령사진 같아서 올리진 않았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정말 미친듯이 올라갔다.
휴대폰 light어플을 켰다. 베터리가 10% 남았다. 이젠 걷는게 아니라 달리는 수준이다.
한참을 돌아 내려오니 저지마을로 가는 진입로가 보였다. 다시 달렸다.
마을회관 옆에 있던 편의점... 13코스는 물과 간식을 충분히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용수포구, 아홉굿 마을, 저지마을 이 3군데에서만 물품 구입이 가능합니다. 물론 현금...
총시간 4시간 반이 걸렸네요... 저지오름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습니다. 다음번에는 아침일찍 와야겠네요.
제주시로 돌아가시려면 편의점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신창이나 한림가는 버스 타시고 난뒤 내려서 다시 제주시 가는 버스타시면 됩니다.
여유로운 산책에서 나름 생존게임으로 변모했지만 ;;; 생활에 찌든 본인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레길은 오전에 출발하세요 ㅠ 건장한 남성도 벌벌떨게 만들수 있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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